거리에서 한 번쯤 벽면을 가득 채운 화려한 색채의 그림 혹은 누군가 휘갈긴 듯한 낙서 같은 글씨를 종종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기원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동굴 벽화부터 시작할 수 있듯이 낙서는 인류가 문화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연스레 행해왔던 생활의 한 흔적이기도 하다. 낙서 안에 잠재되어 있는 해방감과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점은 이 행위가 어느 정도 예술과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하나의 예술로 자리잡은 그래피티는 뉴욕의 브롱크스 거리에서 낙서화가 범람화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벽, 경기장, 지하철, 자동차 등 거리를 지배하며 도시의 골칫거리로 불리던 낙서는 바스키아의 등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생을 마감하기까지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기며 이름을 알렸다. 어린아이와 같은 자유분방한 화법과 이질적이고 거친 이미지가 혼재된 독특한 작품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은 바스키아는 자유와 사회에 대한 저항의 에너지로 점철된 다양한 작품을 통해 20세기 시각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어가 모국어였던 아버지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그는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고, 이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언어를 표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린 바스키아를 데리고 뉴욕의 주요 미술관을 관람했다. 덕분에 그는 다빈치부터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명화를 감상하며 미술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바스키아와 해부학 바스키아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팔이 부러지고 내장을 심하게 다쳐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비장을 떼어내는 큰 수술을 경험한 그는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인간의 몸과 삶, 죽음을 작품으로 시각화했다. 장기 입원 당시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해부학 입문서를 탐독했고 이로 인해 시작된 신체 기관을 향한 관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해부학까지 섭렵하게 만들었다. 바스키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요소 중 하나인 해부학은 살과 뼈, 신체 기관의 조각난 도식뿐만 아니라 고대 조각, 거장의 작품, 텍스트들이 조합된 다양한 이미지와 독창적인 도상으로 나타난다.
WRITING AND DRAWING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바스키아의 예술 세계는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텍스트와 자유로운 드로잉이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에서 시작된다. 텍스트와 드로잉을 토대로 스프레이, 오일 파스텔, 크레용, 유화와 아크릴 물감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즉흥적이면서도 동시다발적인 의미를 생성했다. SAMO© 활동으로 의미와 형태를 실험했던 바스키아는 알파벳과 단어, 문장과 드로잉을 자유롭게 조합해 회화의 영역을 확장했다.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 간듯한 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각양각색의 단어들로 작품이 구성되었다. 작품 속에서 달걀, 우유, 물 등 매일 먹는 음식을 비롯해 돈과 권력을 상징하는 오일과 같은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또한, 자신이 작성한 글 위에 선을 긋거나 덧칠하는 크로싱 아웃(Crossing-out) 기법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지우기 전략은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바스키아의 글쓰기는 시와 같이 함축적인 의미를 포괄하는 동시에 의사소통이라는 언어의 기능을 넘어서 역동적이고 리드미컬한 조형미를 함께 보여준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선물 받은 [그레이의 해부학 Gray’s Anatomy]은 바스키아에게 강렬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는 이 책으로 인해 인체, 그 중에서도 뼈와 장기, 근육의 구조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몸의 기관을 설명하는 해부학처럼 각각의 이미지에 이름을 표기하고 분류하는 형식을 차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또한, 폴 리처의 [예술적 해부학 Artistic Anatomy]을 통해 심장과 비장 등의 내장 기관, 머리, 팔, 다리, 발, 손과 같은 신체를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와 은 이러한 특징이 도드라지게 나타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BARACCO DI FERRO(바라코 디 페로)는 무쇠 팔이라는 이탈리아어로, 두 작품에서는 만화 캐릭터 뽀빠이가 등장한다. 뽀빠이는 거대한 팔로 악당을 무찌르는 정의로운 캐릭터다. 바스키아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검은색과 노란색의 색채를 사용해 힘과 에너지를 극대화했고, 뽀빠이는 해부학적 형상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골격과 근육, 힘줄의 움직임은 작가 특유의 거칠고 자유로운 선으로 표현되었다.
PORTRAIT 바스키아는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불의를 딛고 성공한 아프리카계 운동선수와 뮤지션들의 초상화를 통해 존경심과 경의를 표했다.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초상화 제작 방식에서 탈피해 직관적으로 표현한 대상의 특징과 단어,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초상화를 제작했다. 바스키아의 초상화에는 물건의 상표, 말풍선, 해부학책 속의 캡션처럼 인물을 설명하는 글자나 도상들이 함께 등장한다. 죽음과 폭력, 차별의 역사를 살아온 아프리카계로서의 정체성은 바스키아 작품에 있어 뼈대를 이루는 주제다. 는 그가 가장 존경했던 야구 선수 행크 에런이 왕관을 쓴 야구공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행크 에런이 훈련하면서 신었던 신발을 통해 그의 노력과 희생 역시 함께 표현했다. 반복적인 이미지들 사이에서 거칠게 흘러내리는 붓터치는 역동적인 화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행크 에런의 영웅적 모습을 극대화했다.
ANDY WARHOL & JEAN-MICHEL BASQUIAT 1982년 10월 4일, 장 미쉘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의 운
명적인 만남이 성사됐다. 바스키아는 워홀을 의지하고 존경했으며 워홀에게 바스키아는 새로운 예술적 영감이었다.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본 워홀은 그와 함께 교감하며 공동 작업을 시작했고, 이들은 1985년까지 15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공동으로 제작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바스키아와 워홀은 끊임없이 대형 작품을 제작했다. 워홀이 먼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시작하면 바스키아가 마지막으로 거친 붓질로 글씨를 지워 작품을 마무리했다. 대중문화와 물질주의의 양면적 모습을 폭로하는 두 천재 화가의 역동적인 예술 세계는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1985년《워홀-바스키아 페인팅 Warhol-Basquiat Paintings》전시가 미술계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끝이 났지만, 1987년 워홀이 수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 워홀의 죽음은 바스키아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고 은둔생활을 하며 작품에 열중하던 바스키아는 다음 해인 1988년 약물 과다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명적인 만남이 성사됐다. 바스키아는 워홀을 의지하고 존경했으며 워홀에게 바스키아는 새로운 예술적 영감이었다.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본 워홀은 그와 함께 교감하며 공동 작업을 시작했고, 이들은 1985년까지 150여 점이 넘는 작품들을 공동으로 제작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바스키아와 워홀은 끊임없이 대형 작품을 제작했다. 워홀이 먼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작품을 시작하면 바스키아가 마지막으로 거친 붓질로 글씨를 지워 작품을 마무리했다. 대중문화와 물질주의의 양면적 모습을 폭로하는 두 천재 화가의 역동적인 예술 세계는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1985년《워홀-바스키아 페인팅 Warhol-Basquiat Paintings》전시가 미술계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서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끝이 났지만, 1987년 워홀이 수술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 워홀의 죽음은 바스키아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었고 은둔생활을 하며 작품에 열중하던 바스키아는 다음 해인 1988년 약물 과다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바스키아는 처음부터 유명한 스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바스키아의 작품에는 그가 좋아하는 예술가, 음악가에 대한 상징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자신도 그들처럼 전설이 되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잭슨 폴록의 추상적인 면모와 앤디 워홀의 팝아트가 조합된듯한 과감함과 즉흥성, 색감, 자유분방한 표현은 미술계를 확장시키는 새로움이었다. 슈퍼스타를 꿈꿨던 청년은 단숨에 그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급격한 성공을 뒤따라온 시기와 질투, 흑인에 대한 위선적인 관심은 그를 갉아먹고 말았다. 자본주의 시대 미국에서 차별받던 흑인의 삶과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소리쳤던 바스키아는 작품 속에 영원히 남아 우리에게 압도적인 에너지를 선사한다.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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